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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와 미중 무역전쟁, 기회냐 위기냐

작성자
관리자
조회수
132
등록일
2020.09.18
수정일
2024.04.30

코로나19와 미중 무역전쟁, 기회냐 위기냐



지금 글로벌 경제는 기로에 서있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인한 미국과 중국의 디커플링은 그동안 세계화에서 소외되었던 나라들에게는 기회로 다가오고 있다. 대표적인 나라가 베트남, 태국 등 동남아 국가이고, 동유럽의 국가들도 기대를 갖고 준비하고 있다. 케냐와 같은 아프리카 국가들도 그동안의 어두운 내전의 시대를 끝내고 글로벌 경제에 참여하기 위한 민주화 시대를 시동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 어느 나라보다 미중 갈등의 한가운데서 양쪽의 주시를 받고 있다. 그런 만큼 기회가 될 수도 있고, 위기가 될 수도 있다. 그런 기회를 살리는 것은 상황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능력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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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와 기회는 같이 온다고 한다. 그래서 위기이다. 하지만 극복되는 위기도 있고, 오히려 망가뜨리는 기회도 있다. 본의 아니게 태어났고 살아가는 상황은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늘 변하고 주어진다. 그렇지만 그런 기회를 살리고 죽이는 것은 또한 인간의 노력에 의하여 위기를 기회로 살리기도 하고, 주어진 기회를 폭삭 망하는 악재로 만들기도 한다. 그러한 사례들은 역사적으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박정희가 정권을 잡은 1961년 이후 글로벌 경제는 전쟁없는 발전의 시대였다. 그러나 한국의 상황은 녹록하지 않았다.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확보한 3억 달러의 무상 자금과 2억 달러의 차관으로 경제 개발의 종자돈을 마련하였다. 이후 그는 조국 근대화를 통한 경제 자립을 추진하였다. 



그는 낙후한 한국의 경제를 살리기 위한 여러 가지 경제정책을 취하였다. 그는 재임 기간 중 경부고속국도 건설, 수출 증대, 소득 증대, 저축 장려, 식량 자급과 자족 실현, 새마을 운동 등을 통한 인프라 구축으로 일제강점기와 한국 전쟁을 거쳐 황폐화된 한국 경제의 비약적인 발전에 기여하였다. 그의 경제 정책의 성공에는 미국 중심의 민주 자본주의 진영의 호경기도 있었지만, 그에 못지않게 박대통령을 중심으로 '잘 살아 보세!'라는 구호로 똘똘 뭉쳤던 국민이 있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었다. 



그가 경제를 집권했던 기간동안 '종속이론'을 내세우며 폐쇄경제를 주장했던 대부분의 나라들이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졌던 반면에 한국은 글로벌 경제에 뛰어들며 개방경제를 적극 추진했다. 기회가 좋았지만 대부분의 나라들이 이를 살지지 못하였지만, 박정희는 기회와 내부 잠재력을 폭발적으로 키워 경제를 키웠다.



김대중이 집권하는 1997년은 김영삼 정권 말기에 터진 IMF구제 금융요청을 하던 때였다. 당시 IMF는 한국에 가혹한 조건을 내세우며 경제개혁을 하고 대외 부채 청산을 요구하였다. 이 때 당시 한국의 외환 부채가 약 304억 달러에 이르렀다. 



이러한 상황에서 새마을부녀회 중앙연합회에서 1907년 대한제국의 국채를 갚기 위해 벌여진 국채보상운동의 정신을 계승하여 국민들의 애국심과 단결력을 이끌어내고자 했던 회원들은 12월 8일까지 금으로 된 물건들을 모아서 국가에 헌납하기로 결의했다. 이 운동은 곧 전국적으로 확산되었고, IMF위기를 극복하는데 커다란 역할을 하였다. 



금모으기 운동은 초기에는 모은 금을 헌납하였지만, 이후에는 정부에서 보상하는 체계로 변경하였다. 그러나 이 운동으로 한국인들의 애국정신과 단결은 글로벌 경제에서 내부 단결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되고 있다. 



김대중대통령은  3년만인 2000년 12월 4일 김대중 대통령이 IMF 외환위기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공식 선언했다. 또한 2001년 8월23일에는 IMF 구제금융 자금 총 195억 달러를 완전히 상환하고, IMF 관리체제를 공식 '졸업'했다. 이는 사상 유례없는 조기 위기 극복으로 세계의 주목을 끌었으며, 이는 김대중 정부의 큰 업적으로 기록됐다.



642년 막리지의 난을 일으켜 대막리지(大莫離支)를 신설하고 연개소문, 연남생, 연남건으로 세습되는 연씨정권 (淵氏政權, 642년 ~ 668년) 26년간 무인정권을 세워 고구려 왕조의 실권을 맡았다. 단재 신채호에 따르면, 지금의 중국 베이징(北京)의 조양문 바깥 7리 지역을 비롯해 산하이관(山海關)부터 베이징까지 황량대(謊糧臺)라는 이름의 유적이 10여 곳이 남아 있는데, 현지에서는 당 태종이 고구려군의 내습에 대비해 모래를 잔뜩 쌓아 군량창고처럼 보이게 해놓고 고구려군이 오면 공격하던 곳이라는 전설을 전하고 있다. 



연개소문은 당태종을 베이징 근처까지 추격하였다는 증거를 남길 정도로 한반도, 만주는 물론 중국 중원까지 호령하였던 인물이다. 그의 기회를 살렸다면 고구려는 몽고족이나 만주족처럼 중국을 정벌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의 군사적 장점에도 불구하고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의 역할을 그다지 화려하지 않았다. 



생전에 비정상적인 독재정치를 실시하면서 후계구도도 안정시키지 못하였기에, 그가 죽자 금새  아들들의 싸움이 일어난 것이다. 결국 그의 장남 연남생이 당나라와 내통하면서 고구려를 멸망의 길로 이끈다. 상황이 좋아도 내부 결속없이는 기회를 살리기는커녕 오히려 악화시킬 수있다는 전형적인 사례이다.



이조시대의 선조는 그야말로 내분에서 시작해서 내분으로 끝났다. 임진왜란 와중에도 선조가 국난 극복을 위한 어떤 행동을 했다는 자료를 보지 못하였다. 재위기간 중, 사림의 정계장악이 확고해지고 동서붕당으로 인해 당쟁이 시작되었다. 또한 일본의 침입으로 임진왜란이 발발하여 국토가 황폐화되고 전국이 전장터가 되어 개국이래 내외적으로 가장 혼란한 상황을 맞았다. 



왜군의 침입에도 막아 싸울 생각을 하기보다는 도망갈까, 대항할까를 놓고 조정의 대신들은 격론을 벌렸다. 이순신이라는 위대한 장군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임진왜란 전세 역전의 기회를 살리지 못하였다. 이후 숙종이 조선 왕조가 전란의 피해 복구와 국가 재정비 사업이 일단 마무리되어 중흥의 기틀이 다질 때까지 오랜 기간 조선은 사분오열로 지냈다. 



그렇다면 지금의 상황은 어떨까? 현재의 상황이 그리 좋다고 할 수는 없다. 어쨌든 세상은 규모가 줄어드는 '수축사회'로 진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문재인 대통령은 '김대중' 또는 '선조'의 길을 걷게 될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좋을수록 동 시대를 살았던 국민의 삶은 좋다. 



과거와 달리 역사적 인물에 대한 평가도 실시간으로 나올 수 있다. 많은 자료들, 특히 업적에 대한 수치가 실시간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현재까지는 그리 밝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앞으로 더 좋아질 시간은 여전히 남아있다. 난 그가 최소한 김대중, 더 나아가서는 박정희 정도로 평가받기를 기대한다. 

출처 : 조세일보/ 20.09.17